새로운 회사에 둥지를 튼 후 세 번의 비딩이 있었다. 연락을 주거나 기회가 보이는 곳에는 가능한 한 다 들이대는 것이 이 회사의 방침 아닌 방침이다 보니, 한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비딩에 참여하게 되었다.
세 번의 비딩이 비슷한 성격을 띄지는 않았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형태의 비딩이었지만 에이전시 브리프를 바탕으로 하여 인쇄광고 시안을 최종 결과물로 제시하는 것이 숙제였고. 두 번째는 AOR 에이전시 선정을 위해 에이전시 역량과 운영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보여주는 것이 숙제, 세 번째는 브랜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제안하는 것이 과제였다. 각기 다른 배경과 과제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공통적으로 느낀 바가 있었으니, 바로 에이전시 차원의 전략 부재라는 것이다. 아니, 전략이라는 말보다, 에이전시가 과제를 풀어가는 사고의 방식, 프레임 또는 Methodology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위키피디아에는 Methodology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Methodology is generally a guideline system for solving a problem, with specific components such as phases, tasks, methods, techniques and tools.It can be defined also as follows:
- "the analysis of the principles of methods, rules, and postulates employed by a discipline.
- "the systematic study of methods that are, can be, or have been applied within a discipline"
- the study or description of methods.
A methodology can be considered to include multiple methods, each as applied to various facets of the whole scope of the methodology.
커뮤니케이션이 비즈니스와 마케팅 상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회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가장 크게 활용되는 방법이라는 것은 마케팅개론 첫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다. 문제 해결과 기회 강화를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펼치느냐는 것이 에이전시 업의 본질일테고. 그렇다면 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대체 어떤 사고 과정과 프레임을 통해 뽑아내느냐는 것이 에이전시의 출발점이고 핵심이자 경쟁력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에이전시가 그러하듯이 사고 과정과 프레임에 대한 특징은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든 원인은 세 번의 최종 리허설이었다. 첫 번째 리허설에서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명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는 "광고주가 무엇을 봐야 하는 지, 우리가 무엇을 팔아야 하는 지를 모르겠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어차피 에이전시 수행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 번째는 달랐는데, 영업을 중시하는 광고주가 "왜 이런 광고를 해야 하는 지, 우리가 준비한 아이디어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 12시간을 남겨 놓고 내가 한 것은 기획서 수정이었고, 출발 1시간 전에 리허설을 다시 받고는 "어제 보다 100배 낫다"는 코멘트를 받았다. 세 번의 코멘트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맥락은 전략적 분석, 현상과 과제를 달리 해석하는 통찰력, 아이디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 보다, 보고 듣고 읽기 쉬운 '겉치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종 보고 듣고 경험할 수는 있으나, 개인의 호불호에 의한 소모적인 판단과 보완 보다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이해하는 사고의 근간을 통해 본질적인 보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웅현 ECD가 광고계에 큰 획을 그어 왔고 한국을 대표하는 광고인으로 평가, 인정받는 이유도 인문학이라는 큰 줄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함께 일 하는 스탭들도 그의 영향을 받아 현상의 근본을 고민하고, 그것을 아이디어로 전환하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메이트가 포지셔닝이라는 전략적 차별성 때문에 독립 대행사로서 두드러진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고 산업이 굉장히 시스템화 되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적인, 철학적인 부분들이 간과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군분투 해야 하는 독립대행사가 '한 칼'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핵심으로 접근하여 경쟁력을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고, 그 부분에 시간적으로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는 '공장'이 있는 반면 한 순간의 플래시 같은 '공장'도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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